山水畵 사상과 寫景의 전통 - 홍선표 > 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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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GRAPHY

山水畵 사상과 寫景의 전통 - 홍선표

석운문화재단
2025-01-08 09:25 18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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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水畵 사상과 寫景의 전통: 河泰瑨의 사경정신과 소묘주의

 

홍선표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 · 한국미술연구소 이사장

 

자연은 모든 생물체의 불변적 터전이면서 우리들 삶의 원천으로서의 의의를 지니고 있다. 우리들 누구나 자연의 섭리에 의해 태어나고 자연계의 일부로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 · 도와 연계된 동양적 사유와 삶의 형태는 이러한 자연관에 기초하여 형성되었으며, 그 중에서도 중세적 지성으로 존재했던 문사들은 자연을 인간이 따라야 할 최고의 典範으로 강조했었다. 특히 이들은 자연을 세계의 근본모형으로 보고 理法을 삶의 운영원리로 삼았을 뿐 아니라, 이를 통해 마음의 내적 자원을 배양하면서 聖人的 大我를 실현코자 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자연과 동화되는 삶을 추구했던 문사들은 이를 실행하기 위하여 산수를 자연의 표상을 생각하고 천리가 유행하는 우주적 질서와 조화의 공간으로 이상화 시켰었다. 이에 따라 산수자연은 종래의 주술적 외경의 대상에서 자기수양과 계발의 도장으로 인식케 되면서 이욕에 물든 세속으로부터 본성을 지키고, 심성을 기르고, 정서를 펼치는 明哲保身養神樂道의 이념적 · 심미적 장소로의 부각과 함께 문학, 음악, 그림 등의 주제로서 널리 각광받게 되었던 것이다.

자연현상과 자연경물을 소재로 그리는 산수화는 바로 이와 같은 得道體道를 위한 修己的 교학목표를 수행하고 우주적 조화의 체험과 심미적 가치를 통일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臥遊之資로서 심화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수묵사상과 더불어 고려시대부터 본격적으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고전적 이상경을 소재로, 성행되니 정형 산수화가 규범화된 경물의 모방과 함께 그 격식을 추종하는 등 형식화의 길을 걷게 됨으로써 주위에 실재하는 현실경을 소재로 한 실경산수화를 통해 인간과 자연과의 체험적 교감에 기초한 산수화 본연의 이념을 추구했었다는 데 주된 특징이 있다.

원래 실경산수화는 고려시대의 11세기 초부터 그려지기 시작하여 王業과 관련된 太平勝地나 종교적 성지 등을 선양하기 위한 실용적 차원에서 다루어졌으나, 17세기 경의 조선중기에 이르러 감상화로 전환되면서 기존의 정형산수화가 擬古풍조에 따라 자연과 자아의 직접적 교류가 배제된 상태에서 허구화되는데 대한 반발로 대두되었던 것이다. 老論近畿南人 실학파와 중인 계층 여항문인 등의 진보적인 지식인들에 의해 주도된 실경산수화의 이러한 조류는 상고주의의 형식화에 수반되어 정체된 중세문화의 관습을 극복하고 수정하기 위해 사물의 현실과 개체현상을 통해 古意와 보편적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던 당시의 사상徒養과 밀착되어 전개되었다는 점에 각별한 의의를 지닌다고 하겠다.

이와 같이 사물의 개성과 의 가치가 재인식되는 탈중세적 사조와 연계되어 현실적 자연경이 주목되고 이를 통해 산수화 본래의 뜻과 정신을 회복하기 위해 대두된 실경산수화는 실물경관을 직접 묘사하는데 필요한 寫景이란 창작방법을 새롭게 부각시켰다. 사경은 현실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경관을 應目實寫를 통해 구현시키는 방법으로 자연물의 창생과 동질의 완전한 창작에 도달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하는 실천 과정으로서의 의의를 함께 지녔었다. 다시 말해 조선후기의 대표적 문인화가이며 이론가였던 姜世晃도 사경을 傳神寫照에 비유했듯이 以形寫神, 즉 대상의 본질화를 위한 熟看物化의 창작과정이 담보된 실물사생법을 뜻했다. 따라서 사생의 올바른 정신은 시각체험의 정확한 기록보다 세밀한 관찰과 집중적 몰입과 물아일체의 경지를 통해 각 경관에 내제된 자연의 무궁한 마음을 깨닫고 그 영묘한 조화력과 아름다움의 비밀을 포착하여 옮기는데 있었으며, 이를 위해 泉石膏盲, 즉 산수자연을 애타게 사랑하는 마음가짐과 行萬里路의 실천과 닳은 붓이 무덤을 이룰 정도로 많은 현장에서의 소묘가 요망되었던 것이다.

조선후기의 실경산수화풍을 대성시킨 鄭敾이 거짓으로 꾸며진 종래의 허구화된 정형산수화의 누습에서 벗어나 동국산수화를 새롭게 개벽시킬 수 있었던 것도 이와 같은 사생정신에 의해 평생을 두고 명승지를 돌아다니며 붓무덤을 이룰 정도로 한시를 쉬지 않고 사생하면서 우리나라 산수의 자연미와 그 특성을 파악하고 거기에 맞는 독특한 표현양식을 창출해냈기 때문이었다. 사경의 이러한 전통은 일제시대로 계승되어 민족의식과 전원의식이 가미되면서 향토적 실경산수화풍을 형성시켰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李象範은 보다 투철한 사경정신과 소묘주의를 통해 근대 한국산수화의 뛰어난 전형을 이룩했었다.

石暈 河泰瑨은 한국회화사의 가장 창의적인 양식인 실경산수화의 전통을 계승한 현대화단의 대표적인 작가로 손꼽힌다. 굵고 대담하고 활달한 붓질과 가늘고 세밀하고 부드러운 필치와 짙고 옅은 먹빛의 심오한 변조와 엉키고 번진 발묵과 파묵의 다양한 표정 등의 대조적인 기법을 특징으로 하는 그의 화풍은 음양의 조화원리가 작용한 듯한 힘차고 생동감 넘치는 화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화면은 매우 뛰어난 기량으로 다루어져 있어 깊이 있고 원숙한 느낌을 함께 자아내기도 한다. 특히 근래에 이르러 요약된 형태의 독특한 조형미를 비롯하여 수묵의 질료적 특성과 무궁한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한 듯한 먹기둥의 장쾌한 맛과 먹빛, 여백의 긴장감 넘치는 강렬한 대비효과 등을 통한 새로운 연출은 마치 우주적 질서와 조화가 내장된 자연미의 본질과 그 원형을 보는 듯 하다.

석운 하태진의 이와 같은 개성적인 회화세계는 무엇보다도 정선이래 한국적 실경산수화풍 창출의 근간을 이루었던 사생정신과 소묘주의의 창작태도에 토대를 두고 형성되었다고 하겠다. 이러한 창작태도는 그의 사제관계나 학위논문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은사 이상범을 통해 수립된 것으로 靑田 문하생 중 누구보다도 가장 투철한 자세를 보여왔다. 그는 대학교수의 바쁜 생활 중에서도 지금까지 일 년 가운데 거의 반 이상을 야외사생을 위해 국내는 물론 해와의 명산대천을 찾아다녔다. 그의 이러한 부지런하고 꾸준한 사생여향은 결코 유한적인고 유락적 취미가 아니라 올바른 사경정신을 구현하기 위한 자연교감의 적극적인 실천과 더불어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가짐에서 연유되었다고 하겠다. 특히 그의 자연애는 반문명적 원시회귀본능과 함께 우리를 포함한 모든 생물체의 불변의 원천이며 영원한 터전으로서의 자연에 대한 근원적 신념의 발로라는 점에서 각별한 의의를 지닌다. 그리고 이러한 친자연주의는 현대의 물질적 인간관과 산업사회의 반생명적 소외문화 형태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비전으로서도 주목을 끌게 한다.

이와 같이 하태진은 자신의 회화세계를 특징짓는 자연관과 사경정신의 구현을 위해 사생여행을 삶의 주요일과로 수행하면서 수많은 소묘를 남겼다. 그의 이러한 소묘들은 모두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어 본격적인 제작을 위한 단순한 메모나 초벌 그림 이상의 완결성과 함께 작품 그 자체로서 허용될 수 있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들 소묘들은 현장을 통해 이루어진 작가와 자연과의 시각체험과 내적인 교감과 이러한 관계에 의해 발양된 서정적 감흥 등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 특히 대상의 구조와 본질을 포착하고 이를 표현하는 과정과 역량이 진솔하게 그대로 담겨져 있어 더욱 각별하게 여겨진다.

 

출처: 石暈 河泰瑨(明立美術, 1997), pp. 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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