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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GRAPHY

수묵산수화의 전통과 石暈 - 한정희

석운문화재단
2025-01-08 09:23 14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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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묵산수화의 전통과 石暈

 

한정희

홍익대학교 예술학과 교수

 

 

안정된 묘사와 기운찬 필력이 특히 뛰어난 石暈 河泰瑨의 산수화는 청전 李象範의 새로운 한국적 실경산수화의 맥을 잇는 중요한 작업이다. 70-80년대 수묵화 운동에 앞장섰으며 新墨會를 조직해 우리의 것을 되살리는 일에 헌신한 그의 노고는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그의 작업의 의미를 되새겨보기 전에 수묵화 특히 실경산수화의 형성이 동아시아에서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짚어보는 것이 그의 위치를 확인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겨진다.

동양미술에서 수묵산수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근 천년에 걸쳐 위축됨 없이 계속되어 동양미술의 상징과도 같이 여겨지고 있다. 회회에도 여러 분야가 있지만 동양에서는 유독 산수에 탐닉하여 많은 걸작들이 나오고 있으며 회화사를 주도해왔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산수에의 경도는 처음에는 자연에의 귀의를 추구하는 도교와의 관련에서 시작되었지만 점차 성리학과 연관되어 사물의 본질인 를 드러내는 가장 좋은 대상으로 인식되었으며 따라서 성리학이 기피하는 채색이 아닌 수묵산수화가 크게 성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후대에 와서는 산수가 자연의 재현이라는 의미보다는 필과 묵이 자유롭게 노니는 마당으로 인식되는 면이 더 컸다. 따라서 추상적인 산수, 윤곽선만에 의한 산수, 농묵의 산수 등 여러 변형들이 등장하여 자연의 실제 모습과 관계없이 전개되었다.

이런 개념화된 관념산수화에 대한 반발과 실질을 중시하는 실학의 발달로 17세기 중국에서 드디어 실경산수가 성장하기 시작한다. 중국에서 기암절벽으로 유명한 黃山을 주로 대상으로 하면서 발전했고 18세기 우리나라에서 금강산을 중심으로 진경산수가 발달하고 일본에서 후지산을 중심으로 眞景圖가 성장한 것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이후 중국에서는 실경산수의 전통이 지속되어 黃賓虹, 劉海粟 등이 황산을 스케치하며 계속 그리고 요즈음은 賈又福, 李明久 등이 太行山을 주로 그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鄭敾派 화가들이 실경을 주로 그리다 秋史派에 의해 주춤하였으나 일제시대 이상범, 卞寬植 등에 의해 되살아나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일본도 葛飾北齊歌川廣重의 멋진 실경 우키요에들이 많이 있으며 근대의 吹田草牧 등의 실경화들은 이상범, 변관식의 실경산수화 창출에 자극을 주기도 했다.

이와 같이 실경산수화도 한, , 일 삼국에서 다같이 추구되어 온 것이나 관념산수에 비해서는 역사가 길지 않으며 관념산수와 상호보완의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실경이 관념산수에 비해 회화적으로 훨씬 아름답거나 나은 것도 아니고 관념산수가 그만 못한 것도 아니다. 진짜 실제 같은 실경산수화는 서양식이라 하여 경멸되었으며 동양에서는 실제를 바탕으로 하되 부분적으로는 상당한 변형이 가미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러한 동양의 실경산수화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것이 석운 하태진의 산수화이다. 직접적으로는 은사였던 이상범의 영향을 받고 있지만 간접적으로는 許百鍊, 盧壽鉉 등과 같은 근대의 산수화 작가와도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본다. 특히 서양의 추상표현주의의 영향으로 등장하였던 수묵 산수화에 있어서의 대담한 필묵의 구사와 우연성의 추구, 번짐의 효과 그리고 강한 기세의 표현 등과 같은 기법과 태도도 석운 하태진의 화풍 형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본다.

석운 하태진은 1970년대에 한국에서 새롭게 부각되었던 실경산수화의 흐름을 주도했는데 李永燦, 金東洙, 李仁實 등과 함께 한국 자연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았었다. 이들의 사생에 기초한 실경산수는 이전의 이상범과 변관식이 주도하던 다소 정형화된 형태에서 떠나 보다 다양한 실제 산수의 형태를 묘사하였으며 아울러 섬세한 세부처리와 견고한 구성, 농담의 대비 등의 효과처리로 새로운 진전을 보았다.

이들은 80년대에 들어와 각자 다른 길로 나아갔는데 그 중 석운 하태진이 종전의 세필묘사의 바탕 아래 새로이 발묵의 효과 그리고 기세의 표현 등을 가미하여 보다 참신한 실경산수를 시도하여서 주목되었다. 건실한 구도와 안정감 있는 형태묘사에 뜻하지 않게 나타나는 과감한 시도는 수묵산수화의 묘미를 한껏 더하며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계곡>, <>, <>과 같이 바위들 만으로 구성을 시도하고 있는 작품들이 있는데 이것은 그의 구성에 대한 감각과 자신감 그리고 추상미의 추구라는 측면에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검은 바위와 흰 바탕화면의 강한 대비는 수묵화의 특성을 잘 살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앞으로도 새로운 변화가 계속 일어나겠지만 지금까지의 작품을 통해 본 석운 하태진의 수묵산수화의 매력은 건실한 구성에 정교한 세부처리 그리고 적당한 곳에 효과를 위한 속필이나 번짐의 효과를 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회화적 특성을 가지고 무한한 실경의 변화에 맞추어 계속 그려나간다면 물론 다양한 수묵산수화가 나타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작품에서 지속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신선함을 줄 수 있는 새로운 기법과 창의적인 구성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은 전통 수묵화가 크게 위협받는 시기이기도 하다. 설치미술과 현란한 색채의 미술이 강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예전의 영화에 젖어 있을 수만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우리의 전통 회화이자 동양정신의 상징인 수묵화를 잘 유지시켜 우리의 정체성을 살리고 새로운 시대상황에도 적응해 가야하는 것이다. 수묵산수화에서 새로운 경지를 열고 또 진전시켜왔던 석운 하태진에게 부여된 이와 같은 사명은 지금까지 그가 이루어온 업적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출처: 石暈 河泰瑨(明立美術, 1997), pp. 329-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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